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프로이센 왕국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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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육군 === [[육군]]은 [[브란덴부르크-프로이센]] 시절의 군대를 모태로 형성되었고, 전통적으로 프로이센 왕국군의 핵심이었다. [[기병]]이 아닌 [[전열보병]]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이센의 육군은 '군인왕' [[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]]가 사망하고 그 아들인 [[프리드리히 2세(프로이센)|프리드리히 2세]]가 즉위한 [[1740년]] 시점에 80000명 가량이었으며, 국가 예산의 7분의 5가 육군 중심의 군에 배당되었을 정도로 처음부터 매우 중시되었다. 따라서 군 혁신 또한 육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. 세계 최초로 후장식 볼트액션 소총인 [[드라이제]]를 전력화하고, [[일반참모]] 제도를 통해 근대적인 군 [[편제]]를 만들어낸 것이 대표적이다. 또한 프로이센 왕국의 [[산업 혁명]]과 [[철도]]의 보급은 신속한 병력 기동을 가능케 했다. [[헬무트 폰 몰트케|대(大) 몰트케]]에 따르면 [[1866년]] [[프로이센-오스트리아 전쟁|오스트리아와의 전쟁]]에서 프로이센은 28만 5천 명을 단 25일 만에 전부 전장으로 보낼 능력이 있었다. 오스트리아 제국은 그보다 적은 20만 명을 45일씩이나 걸려서야 이송할 수 있었다. 다만 프로이센 왕국의 기병 전력도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았다. 프로이센 왕국군의 기병 부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럽 최고로 평가받았다. 그들의 말은 최상품에 속했고, 기마병 역시 용맹스러운 데다가 훌륭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[* 출처: 나폴레옹 전쟁/ 그레고리 프리몬-반즈, 토드 피셔 지음/ 박근형 번역/ 플래닛미디어/ 61쪽]. [[일본 제국 육군]]에 큰 영향을 끼친 병과이기도 하다. 일본이 19세기 중엽 [[메이지 유신]]으로 막 서구에 문물을 개항한 직후, 서구 열강들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갖기 위해 유럽에 사절단을 보내 각 나라들의 군대를 참관했는데 엄격한 군율과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프로이센 육군이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하여 프로이센 육군을 모방해 일본 제국 육군을 만들었던 것이다[* 반면 일본 제국 해군은 19세기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국이던 [[영국 해군]]을 모방하여 만들었다. 이 과정에서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 병사들이 즐겨 먹었던 [[카레]]를 도입하였고, 이것이 조선에도 들어오게 된다.]. 실제로 [[러일전쟁]]까지 일본 제국 육군은 부족한 수적 열세를 화력의 우위로 극복하여 다수의 적을 제압한다는 프로이센 육군의 교리를 충실하게 이행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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